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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코리아 2024》를 읽고

by iseohyun [2024. 5. 24.]

총평: 3040 아주머니들이 들려주는 트렌드 이야기

 

책의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형식과 화자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형식적 완성도는 높다. 매년 같은 주제로 출간하는 단체이고 열댓 명이 참여한 만큼, 타이포가 아얘 없는 것은 아니지만 (타이포는 전공서적에도 간간히 등장할 정도로 흔한 일이다), 표현의 통일성이나 문단 및 주석의 배치 등에서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화자에 대해. 작가의 출신 성분을 이용해 글의 취지를 왜곡하려는 의도는 없다. 다음과 같은 간단한 화두에서 시작했다.

 "누군가 이 글(독후감)을 끝까지 읽었을 때, 글의 내용, 형식, 어투, 단어선택, 분위기로 쓴 이의 연령과 성별을 유추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면 어디까지 알아낼 수 있을까? 숨길 수 있을까?" 

 비슷한 사례가 있다. 유투버 '우왁굳'은 아바타의 움직임을 가지고 `23명 중 진짜 여자는 단 3명`, `22명 중 진짜 남자는 단 3명`을 맞추는(우왁굳 성별 맞추기 검색) 콘텐츠를 진행했다. 진짜를 제외하고는 각자는 자신의 성별을 숨겨야 한다.
남자인 척, 여자인척, 하는 행동을 보는 것도 재미요소지만, 본인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생활모먼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에는 그런 생활 모먼트가 있다. 상상해 보자 나는 어디까지 속일 수 있을까?
 
 이 시리즈(트렌드 코리아)는 처음 접해봤다. 책 제목만 보고, 키워드를 리뷰해 보겠다는 가상의 계획이 있었다. 분명 이 책의 저자는 60대 남성, 대학교수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줄곧 3040의 아줌마의 향기가 났다. 그리고 유튜브 채널 '미래북 TV'에 올라온 `트렌드 코리아 킥오프미팅`을 보고 확신이 들었다. 3040 여성의 전문성을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다. 아줌마라는 표현을 쓴 것은 단지 아줌마 특유의 감성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술 할 이유 때문에 키워드의 나열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 유투버의 구독자 순위에 기업과 공영방송을 제외하면 먹방이 거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콘텐츠이다. 하지만 필자가 보는 방송엔 먹방이 없다. 이런 필자가 인터넷 찬스를 써서 먹방에 대해 정의해 보았다.

 "먹방을 보는 이유는 2가지다. 다이어트의 대리만족으로 먹방을 본다. 먹방을 보면 행복한 기억과 관련된 호르몬이 방출되며 충분히 보면 포만감을 느껴 식욕을 이길 수 있다는 연구가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소통하기 위해서다. ASMR만 제공하는 스트리머도 있는 반면, 감정을 교류하는 스트리머도 인기가 높다."

 '너 먹방 안보지!'라는 느낌을 받았는가? '뭔, 의미 부여를.. 그냥 본다 임뫄'라고 할지 모른다. 만약 '먹방'에 대한 이해도가 없는 사람이 내 글을 보고 '먹방'을 이해했다면 그것은 괜찮은가? 유행을 위한 유행어는 곤란하다. 이 책의 키워드를 언급하기 꺼려지는 이유다.
  
 또한 이 책의 근거는 매년 '코난테크놀로지'의 자료를 가장 많이 인용한다. 해당 테크는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의 글을 스크랩해서 기간 동안 언급되는 단어의 수를 카운트한다. 이 방법은 실마리와 이야깃거리를 창출해 낸다. 물론 스크랩된 글의 파급력(조회수)은 반영되지 않는다. 또한 다음 분류가 타당한지 의문을 자아낸다.

 2030: 디시인사이드, 에펨코리아, 인벤, 더쿠, 인스티즈, 웃긴 대학
 3040: 뽑뿌, 루리웹, 클리앙, MLB파크, 보배드림, 이토방, 오늘의 유머, 가생이, Pgr21, 홍차넷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주제에 대해 옴니버스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뒤이어 등장하는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가 등장하더라도 Made up words(:= Fake words)에 가깝다(실제로 저자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설명한다). 진지한 대화소재로 적합하지 않다는 이야기이다.
 

1. '실험용 쥐'

 테크놀로지의 격변을 소개하면서 엠브레인이라는 브랜드가 등장한다. 엠브레인(M.Brain)은 뇌파를 분석해, 운전 중 운전자의 부주의가 의심되면 시청각/촉각 경고를 주는 시스템(브랜드)이다. 실험용 쥐가 떠올랐다. 경고용으로 약한 전류가 흘렀다면 모비스 개발자들 사이에서도 '더할 나위 없는 실험용 쥐' 조크가 나왔을 것 같다.
https://www.mobis.co.kr/kr/aboutus/press.do?category=press&idx=5594

2. '8초인류'

'8초 인류', 리사 이오띠, 이소영 옮김, 미래의 창, 2022

 2019년 영국 런던 Tate Gallery에서 작품 앞에 멈춰 있는 시간은 8초였다. 이는 현대인의 집중력과 초 단위 시간절약에 대한 비판이다. 하지만 시간을 절약하겠다는 시도가 실상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으로도 시간을 아껴보겠다고 멀티프로세스를 연습(?)한 적이 있었다. 예를 들면, 밥을 먹으면서, TV를 보면서 운동을 하는 식이다. 또는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듣는다. 결론적으로 밥을 더 오랫동안 먹어야 하고, 깊이 있는 영상을 소화할 수 없으며, 독서의 속도가 저하되었다. 그래서 최근엔 집중할 때, 음악을 끄고, 통화할 때 통화에만 집중한다(이건 메너와도 관계가 있다).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수행하는 것이 완성도와 생산성에서 좋았다.


3. '프롬프트'

 2023년은 가히 GPT의 시대였다. 전공자는 물론 비 전공자마저 일과 취미에 적극 활용했다. 관련해서 직업의 소멸과 관련해서 여러 가지 추측이 나왔고, 인간의 차별성을 찾다 보니 프롬프트의 영역까지 온 것이다. 프롬프트라는 용어에 위축될 필요는 없다. 프롬프트 = 입력. 같은 GPT라도 입력에 따라 미묘한 출력의 변화가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본인의 입력 행위를 차별화라고 포장한다.

 입력의 차별화라는 단어는 2008년 취업시장에 반짝했던 '인터넷검색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10년 이상 지난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인터넷 검색에 특별한 전문지식이 있을 리 없다. 전문지식에 대한 갈망은 조금 더 아는 것을 과대포장하게 한다.

 '카톡의 숨겨진 기능', '엑셀의 숨겨진 기능'이란 숏 폼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왜 기능을 숨겨놓는지 의아해진다. 개발자 입장에서 사실 기능을 숨겨놓은 적이 없다. UI/UX설계를 뭐 같이 해서 생긴 해프닝이다. 최신 프로그램들은 Setting에 검색기능을 제공해서 모든 기능이 숨겨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숏폼을 보고 있노라면, 노가다 아재가 호들갑 떨며 시멘트 개는 법을 알려주던 것이 생각난다. 복권을 사러 간 노력을 했다고 포장하지만 실상은 단순히 운이었다고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일 뿐이다. 휘둘리지 말자.

4. '평범한 사람들'

 본인의 주 취미 영역은 게임, 스포츠, 애니이다. 스스로 느끼기에 꽤 큰 시장이지만 언급이 거의 없다. 도서 내 언급된 '육각형 인간'도 시작은 삼국지11(게임, 2006)이었다. 잠깐 언급된 <드래곤볼>, <노블레스>마저도 약한 주인공이 점점 성장하는 만화라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고, 올드하다. 트렌드 2024를 이야기하면서 <용의 눈물>이나 <시그널>을 예시로 드는 격이다.

 반대로 드라마나 TV예능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자주 등장한다. 케이블커터인 필자에게 드라마는 세상 밖의 이야기다. 그럼에도 나는 솔로에 나온 사람들이 평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의사, 약사, 사업가들이 나에게는 평범하지 않다.

 평균 올려치기 문화와 K-드라마를 비판하는 목소리를 접해봤는가? 한 때, 드라마에 빠진 여자를 골 빈 X로 묘사한 시기도 있었음에 동의한다. 과격하다. 사실 그렇게까지 까 내려갈 것은 아니었다.

 필자는 K-드라마를 야동과 비슷한 범주에 둔다(안타깝게 야동은 불법이다). 욕구를 해소하는 창구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K-드라마도 어차피 욕구를 채울 겸, 정말 극한으로 작품을 만들 수는 없을까? '삼각관계', '재벌', '커리어우먼', '연하남', '완벽남', '너드남',  '근육', '페미사상', '불치병', '복수', '여성 성판타지', 'BL', '일처다부제', '멍청한 빌런' 이런 요소를 모두 넣어서 끝판왕의 드라마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뭐 어때~ 상상으로 하는 건데!) 2024년 히트한 드라마 '눈물의 여왕'은 위 항목 중 얼마나 만족했을까?
  야동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을 성도착자로 보듯, 현실과 드라마를 구분하지 못하는 여자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가끔은 현실과 드라마를 진짜로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평범'이라는 단어가 주는 첫인상이 누군가와는 다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흑우'

 '버라이어티 가격 전략'이라고 쓰고, '호구 베껴먹기'라고 읽는다. 2023년 영화관은 평단가가 10,000원 이하라고 스스로 인정했다. 10,000원 이상 지불하고 영화를 보면 호구라는 것이다. 일부는 단통법과 같이 규제하면 다 같이 비싸게 살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한 영화관 입장에서 최대한의 호구를 물어야 최대 마진을 잡을 수 있는 정교한 가격정책이라 포장했다.
 하지만 최고의 가격정책을 들고 나온 영화관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박살이 났다. 그리고 시나리오와 감독의 탓만 한다. 서비스가 넓은 스크린과 빵빵한 사운드가 그들의 강점이라면, 왜 OTT와 동시개봉을 하지 못하는가? 그들조차 시의성이 최대 강점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정당한 가격을 지불할 의사는 있지만, 호구가 될 의향은 없다.

 

6. '소비성향'

 디토 소비(나도 소비)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뉴진스의 ditto를 보고 연관 검색을 만들어냈으리라. 구글 트렌드는 해당 그래프가 정확히 뉴진스의 ditto 앨범 발매에 관련되어 있다. 심지어 연관어 25위까지 살펴봐도 consumption은 등장하지 않는다.
 용어는 그렇다 쳐도, 소비성향의 변화는 의미가 있다. 소비는 광고와 연관이 깊다. 우리가 당해왔던 허위광고 패턴을 보자.

세일 알람 가로채기: 타임세일, AI세일이 어플알람을 확인해 보니, 올린 단가를 할인해서 정상가로 팔고 있다.
배송비, 최저가 낚시: 최저가 검색으로 찾은 상품. 배송비가 몇 만 원이었다. 무심코 모아서 결제했다면 당했을 것이다.
댓글 알바: 제품 평점을 보고 구매했더니, 알바였다(리뷰 이벤트는 문화가 되었다), 리뷰 이벤트를 안 하면 손해다(제값).
질량 속이기: 할인가격으로 산 줄 알았는데, 제품의 양이 줄어있다


 돈 몇 푼 아끼자고 몇 십 분씩 알아보고 있다 보면 현타가 온다. 통화가치는 내려가고 시간가치는 올라가니 차라리 빠른 결정이 당하더라도 차라리 합리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맞물려서 사기 관련해서는 속은 사람이 모르면 괜찮다는 식이다. 그래서 나온 게 지인소비다. 설마 얼굴 걸고 장사하는데 낚시하겠냐는 심리가 묻어 있다. 그리고 지인의 범위가 인플루언서까지 확장되었다. 과정이 복잡하지만 여전히 소비의 기준은 합리성이다.

이는 청소년기 소비와 다르다. 청소년기의 소비는 소속감이 강하다. 따라서 합리성보다 심미성이 우선한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감정적으로 예민하다. 그래서 여성들은, 남성이 보기에, 사안의 시비보다 대상의 피아식별에 더 강하게 끌리는 것으로 간주된다. 예를들어 민희진 티셔츠가 아무리 이뻐도, 내가 가진 옷, 체형, 가격, 날씨에 따라 합리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이 많은데, 단 몇 분만에 몇 만 원짜리 구매의사를 결정한 다는 것은 아재 특유의 합리적 소비 논리로 설명 할 수 없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하나의 유행어로 퉁 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발상이란 말인가? 민희진 티셔스의 소비가 디토소비라면 아재의 소비는 전혀 다른 성격이다.

 

7. '내용 채우기'

'전월세 안전계약 도움서비스'가 부동산 계약 생태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평소에 부동산에 관심이 많지만 혹시나 놓친 이슈인가 싶어서 검색해 보았다.

뉴스 단 1건 (5.5천 조회), 유투버 홍보(부동산쇼, 조회 865회)

내용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자료조사 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책이 유튜브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마무리

여기까지다.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메모를 했는데, 몇 가지는 덜어내고 일부만 담아보았다. 
설문조사를 결과를 보고 주위에 물어보면 신기하리만큼 얼추 맞는다. 그게 트렌드다. 그런데 이 책은 솔직히 공감하기 힘들었다. 물론 내가 공감하지 못한다고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알고리즘이 얼마나 화자편향인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나도 알고리즘의 편향성을 피해가지 못했다. 분명 아줌마들 사이에서는 높은 공감을 받을 것이라고 예측해본다.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책도 정보의 편향성을 피해가지 못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해야 할지 고민해 봤다. 책이 유튜브와 다르다고 믿는 6070 어르신들에게 적합하다. 읽으면서 스스로 교양이 넓어진다는 자존감을 넓이기 좋다. 또한 젊은 여성과 이야기할 때 지적 허영으로 좋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에 이 글(독후감)을 보고 어디까지 유추할 수 있을지 질문했다. 예시로 든 방송의 주 연령층, 과감한 단어 사용, 관심사, 편향된 생각 등을 통해 '나 남잔데~'라는 소개 없이도 3040 언저리의 공학계열 아저씨임 유추해 냈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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